지식이 최고급의 권력을 낳는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러한 권력의 세가지 원천인 폭력과 부와 지식이 정보화사회에 들어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고 확산되면서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유명한 미래학자인 엘빈 토플러는 단순한 권력이동(power shift)와 구별하여 권력의 이전이
사회변동은 바로 이러한 거대전환을 반영하고 있다. 민주화운동이 폭발적으로 전개되었던 1980년대를 국가권력의 억압과 이에 대한 저항이 중심이 되는 ‘정치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면, 1990년대는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의 거대경향이 적극적으로 작동되는 ‘자본과 문화의 시대’였다. 이러한 시
정치참여의 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인해 기존의 민주주의는 정보화 과정을 겪으며 변화되고 있다. 이런 민주주의의 변화된 모습을 전자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즉, 기존의 정치과정에서 중요하지만 실현하기 어려웠던 정책과정의 투명성 확보와 국민 참여의 증대를 인터넷
유권자로 하여금 정확하고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후보자들을 서로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 따라서 후보자는 토론회에서 눈에 띄는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인간적인 특색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국민들의 의사를 대신하는 정치 인사들은 이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고 경직되어 있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런데 이러한 대의 민주주의제도의 위기는 현대 정보사회에 접어들면서 정보기술의 민주적 활용을 통한 해결가능성을 보인다. 정보기술의 발달,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국민들이 각종
정치 참여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인터넷은 정부와 국민 사이, 정치인들과 국민 사이에 쌍방향성 대화를 가능하게 해준다. 인터넷을 통해서 일반 시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은, 정치인들과 시민들 사이의 수직적 정치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통신
정치인들은 다르다. 그들이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헌신도 있었지만, 박정희와 그를 닮으려고 했던 작은 박정희들을 비판해 온 양심적 지식인과 민중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것은 박정희를 반대하는 운동이었고, 그에 따라 그밖에는 아무런 공직 경험도 없
사회의 여건상 정치적 정보의 교환이 쉽지 않았던 간접 민주주의의 단점을 제거해 주는 것이다. 또한 정치적 쟁점의 형성을 대중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서 형성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대중들에 의한 정치적 쟁점의 형성은 인터넷 유저들이 정치적 관심을 가질 수
정치과정에 있어서 매우 획기적이고, 놀라운 변화이다. 사회 각 영역 중 가장 후진적으로 발전하는 속성을 지녔다는 정치도 정보의 유통 체계가 바뀌면서 서서히 변하고 있다. 고도의 정보화가 이루어지기전, 유권자들이 선거와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얻는 방법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특히 광복 이후
인터넷의 위력을 실감한 각 정당과 후보자는 인터넷 선거전략에 총력을 기울였고, 시민의 입장에서는 정치참여의 중요한 도구로서 인터넷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됐다. 아울러 16대 총선에서 정치적 힘을 과시한 바 있는 시민단체도 총선사이트를 개설해 부패정치인 추방운동 등을 벌었다.